정보마당/등반이론

퀵도르를 잡다 생긴 사고

팬더마당 2010. 6. 22. 13:20


지난 8월말 선인봉 설우 길 초입에서 등반 준비를 끝낸 나는 파트너에게 빌레이를 보게 하고 하늘 길 출발 지점인 페이스 성 슬랩을 리딩하기 시작했다. 사선으로 이어진 크랙에는 아직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바위 면은 생각처럼 말라 있지 않았다.

새로 구입한 BOREAL 암벽화는 이렇게 마르지 않은 바위 면에서 마찰력이 발휘되지 않았다. 아니 슬랩 등반에서는 아예 쓸 수가 없었다. 나는 고정으로 박혀 있는 두 개의 볼트까지 퀵드로를 클립한 후 약 40cm 상단에 있는 횡 크랙을 잡고자 홀드에 발을 올려놨지만 미끄러지는 것은 예사고 감각조차 느낄 수 없었다. 추락은 당연하였다.

1차 추락 후 2차 시도를 해 보았으나 이번에는 2번 째 퀵드로 클립 지점에서 아예 무릎을 편 채로 두발을 디디고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겨우 일어서서 홀드에 발을 올려놓은 순간 추락! 이라는 외침을 지르기도 전에 몸은 이미 허공에 떠 있었다.

3차 시도를 해봐서 또 다시 추락을 하면 등반을 포기하던가 아니면 작지만 파트너의 암벽화를 억지라도 구겨 신고 (내 파트너의 발 사이즈는 235, 나는 245였으니 발이 받는 고통은...) 등반을 하던가 하는 생각으로 다시 자세를 잡고 출발! 소리와 함께 홀드에 발을 올려놓고 일어섰으나 홀드 위에 발은 지탱을 해주지 못했다. 예외 없는 추락..

그런데 이번 세 번째 추락에서는 예기치 못했던 사고가 발생했다. 난 평상 시 후배들에게 추락 시 고정된 볼트에 자신의 추락 거리를 줄여주기 위해 설치 한 퀵드로우나 줄을 잡지 말라고 수 차례 강요를 하곤 하였다.

그것은 제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는 괴력의 소유자라 해도 등반 중 추락 시 제동시키고자 고정 설치물을 잡으려 했다가는 제동은커녕 반드시 손바닥 화상을 입거나 손등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등반 자는 누구나 추락 시 고정 설치물을 자신도 모르게 잡으려고 한다. 이는 인간 심리가 그렇다. 나 또한 내가 설치 한 킉드로우를 추락과 동시에 잡았던 것이다. 다행히 퀵드로우는 내 손을 떠나지 않아 매달릴 수는 있었으나, 문제는 퀵드로우를 잡은 것이 아니라 퀵드로우에 연결된 캬라비너를 잡은 것이 문제가 되었고 캬라비너를 잡은 후 추락 반동에 의해 오른쪽, 왼쪽으로 몸이 쏠린 탓에 손에 잡힌 캬라비너가 열리면서 빠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손에 잡힌 캬라비너가 열리면서 고정 볼트를 이탈하고 그 캬라비너를 잡은 내 몸이 공중에 뜬 순간 난 어! 하는 짧은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으며, 빌레이를 보던 내 파트너는 추락하는 내 하중에 의해 몸이 딸려 올라와 왼쪽 옆구리와 팔꿈치가 사정없이 바위 면에 쓸리는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 추락하던 내 몸은 땅에 쳐 박히기 전에 멈춰서 큰 부상은 없었으나 추락 중 첫 번째 볼트에 연결된 줄에 발이 걸려 몸이 뒤집어진 관계로 머리는 바닥을 향해 있었고 바위 면에 등이 부딪치는 충격과 반동으로 목이 아직까지 뻐근하며 뒤통수에는 미세한 찰과상을 입었다.

추락 후에도 캬라비너가 개폐되어 이탈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였고 다만 고정 볼트가 빠져서 추락한 줄만 알고 있었던 나는 내 몸에 퀵드로우가 매 달려 있는 것을 확인 한 순간 할 말이 없었다.

주변에서 등반을 하던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어 내 안부를 걱정하면서도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도저히 수긍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극히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었다.

추락 후 머리가 띵해 약 5분 정도를 앉아 있다가 파트너의 암벽화로 바꿔 신고 목적했던 등반을 끝내고 1번 야영장에 돌아오니 시간은 오후 4시를 넘기고 있었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클라이머들 중 상당수가 등반을 하고 있으며, 내가 알기로는, 등반자 대다수가 추락 시 퀵드로우 등을 잡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는 만에 하나 예기치 못하는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에 미연에 방지 차원에서 참고로 글을 올린다.

이 글은 H 산악회의 등반 대장님이 후배를 위해 직접 써놓으신 자료입니다. 클라이머를 위해 이런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는 그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