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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소매물도 고래개해벽

팬더마당 2010. 8. 26. 20:42

Summer Vacances Ⅰ 해벽등반_소매물도

남녘의 정취 가득한 소매물도 고래개 해벽

춤을 추며 해벽 위로 날고 싶다

하늘로 곧추선 기암절벽과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드는 바다가 만들어내는 절대적 조화! 그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소매물도의 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고래개 해벽위에 서니 망망대해 수평선이 울컥 가슴으로 밀려든다. 모두들 주변 풍경에 압도된 듯 입을 다물지 못한다. 절벽 위 숲은 무성한 동백나무로 가득하고 바위 틈새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나 자태를 뽐낸다. 칠월 어느 날, 넘실대는 파도 소리와 함께 아름답고 추억을 만들고 싶은 우리들은 남녘의 바닷가에서 멋진 하루를 시작했다. 힘든 세속의 생활은 잠시 접어두고.

글|김상철(우정알파인클럽회장) 사진|김종곤 편집장

 

약속 탓인지 이른 아침부터 깨어나 서두른다. 평일보다 주말의 새벽은 항상 빨리 온다. 마당에서 잠시 하늘을 처다 보며 생각에 잠긴다. 날씨가 좋지 않다. 전화벨 소리에 서둘러 배낭을 둘러메고 이명용(43세·우정알파인클럽)씨와 함께 약속 장소인 애드미럴 호텔로 이동하였다. 김종곤 편집장과는 구면이다. 간단한 김밥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저구항에서 기다리는 회원들을 만나기 위해 해안 도로를 달린다. 등반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전 8시경에 낚시 배를 이용해서 섬으로 이동하도록 조치를 취한 모양이다. 오늘 우리가 함께할 소매물도 해벽은 우리 클럽에서도 처음 등반하는 곳으로 참가자 모두 설렘 반 두려움 반이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운무가 몰려와 해안 절경을 구경할 수 없는 아쉬움인지 아니면 바캉스 특집에 사용할 사진촬영 때문인지 날씨를 걱정한다. 허나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싶다.

우정알파인클럽 일행이 기다리는 저구항에 도착하니 송광록(31세·등반대장), 김성주(30세·등반차장), 임준철(43세), 이홍구(29세), 박종호(43세)씨 등이 우리를 반겨준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오늘 일정을 체크해 본다.

예약한 낚싯배 선장에게 전화를 하니9시에 출발하잔다. 8시 10분, 첫 여객선이 소매물도로 향했다.

거제도에서 소매물도로 들어가는 방법에는 일반여객선과 낚싯배를 이용하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우리 팀은 소매물도의 남쪽에 있는 등대섬 앞 촛대봉에서 크랙 루트를 등반한 후 소매물도의 대표적인 해벽인 고래개로 이동하는 일정을 짜놓았기에 이동이 펀이한 낚시 배를 예약한 것이다.

우리도 모두 짊을 챙겼다. 그런데 9시에 출발하면 13시에 철수를 해야 한단다. 요금을 올려달라는 건지 아니면 이동을 못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안개 속이다. 화가 났지만 배를 포기하고 여객선 상황을 체크하니 11시 출발 배편이 있다.

등반대장은 실수를 만회 하려는 듯 동분서주한다. 우여곡절 끝에 저구 마을 옆에 있는 명사에서 다른 낚싯배를 구했다. 소매물도 고래개 해벽까지만 이동하는 것으로 계약을 했다.

그제야 모두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난다.

문제는 날씨다. 가랑비가 내린다. 옥포에는 장대비가 쏟아진다고 전화가 왔다. 하지만 모든 염려를 뒤로하고 소매물도행 ‘미래1호’에 올라 바닷길을 가른다.

해벽 등반이 벌써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싱그러운 해풍에 짠 바닷내음이 코끝으로 찡하게 다가온다. 전 속력으로 달려니 30분만도 채 안되어 소매물도에 도착했다. 강태공들이 각각의 포인트에 내리자 배안에는 우리 일행뿐이다. 배는 곧 등대섬을 돌아 목적지인 고래개 해벽에 멈추어 섰다. 모두 바위에 올라서 고래개 해벽 북벽이 있는 안부에서 짐을 정리하고 서둘러 장비를 챙긴다.

날이 맑게 개었으면 좋으련만 하늘을 보니 범상치 않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우리를 째려보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는데 잠시 후 굵은 빗줄기를 쏟아진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고래개 해벽의 정찰을 시작했다.

확보지점을 확인하고 젖은 바위길을 살펴본다. 어차피 밑이 바다고 때로는 파도가 쳐 빗물아닌 바닷물에 젓기도 하지 않은가.

등반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서둘러 맨 왼쪽에 있는 지옥문 상단의 쌍볼트에 확보하고 하강했다. 이명용씨의 확보 속에 송광록등반대장이 ‘지옥문(5.9)’을 오른다. 손가락이 들어가는 핑거크랙으로 이루어진 약 30미터 길이의 루트다. 이어서 김성주, 임준철, 이홍구씨가 등반을 이어갔다.

모두들 힘자랑하듯 가뿐하게 오르니 하늘이 개이기 시작했다. 바다 안개가 걷히자 소매물도의 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늘로 곧추선 기암절벽과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드는 파란 바다가 만들어내는 절대적 조화! 그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소매물도의 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고래개 해벽위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니 망망대해 수평선이 울컥 가슴으로 밀려든다. 모두들 주변 풍경에 압도된 듯 입을 다물지 못한다. 절벽 위 숲은 무성한 동백나무로 가득하고 바위 틈새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나 자태를 뽐낸다.

칠월의 어느 날, 넘실대는 파도 소리와 함께 아름답고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우리들을 반기는 남녘의 바닷가에서 멋진 하루를 보내는 기분이 이제야 삼삼하다. 자! 이제 힘든 세속의 생활은 잠시 시간 속에 접어두고 오름세계로의 탈출을 즐겨보자!

힘과 밸런스를 요하는 몇 동작이 재미를 더할 것이라는 김편집장의 조언에 따라 지옥문 동굴 우측에 오버행 코스를 오르기로 했다. 난이도가 꽤 있어 보인다. 상단 암각을 이용해 확보한 후 이명용씨를 선두로 등반을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지옥문’에서는 송광록등반대장이 리딩으로 등반을 이어간다.

햇빛은 쏟아지고 클라이머들의 오름짓은 절정을 맞는다. 파란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수평선이 아스라한 풍광에 취해 모두들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임준철, 송광록, 김성주씨가 등반을 마치고 하강한 후 필자도 지옥문에 도전했다. 바닷바람에 거칠어진 바위의 촉감이 온 몸으로 전달된다. 한 스텝 한 스텝 발을 뗄 때마다 바다를 밟는 듯 조심스럽다.

필자를 끝으로 오전 등반을 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동굴에서 점심으로 먹는 라면과 삶은 고동이 별미다. 달콤하고 시원한 수박까지 더하니 행복감으로 배가 불러온다.

시간을 계산하고 오후 여객선 시간대를 확인했다. 헌데 17시 40분 배가 취소되고 16시 20분 여객선이 막배란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않는 느낌이다. 일정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오늘 섬에서 하루를 묵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래개 해벽에서 선착장까지 적어도 30분 정도는 걸어야 하므로 3시 30분 전에 등반을 마치기로 했다. 고래개 해벽에서 선착장까지는 적어도 3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지옥문에서 오른쪽으로 20미터쯤 이동하여 쌍볼트가 있는 지점에서 마지막 등반을 준비했다. 임준철씨와 김성규씨가 하강 후 동시에 톱로핑으로 등반을 시도 한다. 출렁이는 파도가 발밑에 보이고 그 파도를 거슬러 오르는 클라이머의 몸짓이 짜릿한 느낌을 전달해 준다.

등반 내내 해벽에 내리쬐던 햇볕이 다시 밀려오는 구름속으로 자취를 감출 즈음 등반대는 등반을 마무리했다.

해가 저물려면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미련을 남긴 채 짧았던 해벽에서의 하루를 접는 아쉬움이 크게 느껴진다. 장비를 챙긴 후 서둘러 철수를 시작했다.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언덕을 오르니 폐교된 힐하우스다. 힐하우스를 좌측으로 돌아서니 멀리 북쪽 능선아래 여객선 선착장이 보인다. 가파른 길을 10분 정도 걸으니 민가가 나오기 시작하한 낮은 지붕으로 지어진 집들을 돌아 돌아 선착장에 이르러 모여든 무리와 한패가 된다.

배에 올라 거제도로 돌아오는 시간, 선창으로 바다를 바라보니 문득 헤밍웨이가 쓴 소설 ‘노인과 바다’가 생각난다. 거대한 물고기를 낚은 노인에게 있어 바다는 삶 그 자체였다. 처절한 사투 후 얻은 물고기의 앙상한 뼈, 남은 것이 없는 듯 보이지만 그 뼈는 거친 바다를 살아가는 그에게 필요한 불굴의 의지와 도전정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죽는 일이 있을지라도 결코 지지 않는다’라던 그의 말처럼.

클라이머로 살아온 지 30여년. 남들 하는 대로 자유로움에 안주하지 않았다. ‘옥명해벽’과 ‘쌍사바위’ 그리고 ‘애바위’를 개척하고, 히말라야로 알프스로 클라이머의 지평을 넓히며 ‘벽과 오름’이라는 주제가 있는 곳이면 도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소매물도 해벽 끝에서 바라다보던 고래개 해벽과 등대섬의 수직벽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소매물도의 수직벽을 다시 찾아 가리라. 그리고 춤을 추며 해벽 위로 날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