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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옥산 병풍바위

팬더마당 2010. 10. 7. 17:30


 
선경(仙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두타산(頭陀山, 1353m)과 청옥산(1256m)이라는 명산이 만들어 놓은 계곡이니 수려하다.
등반 시작도 전에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조선의 명필 양사언도 이곳에 들러 ‘유불선 삼합의 이상향이 바로 여기’라고 찬탄했으니, 주객이 전도되는 마음은 혼자만의 마음은 아닌 것 같다.

계속되는 장마로 계곡의 물이 넘쳐난다.

또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과 한적한 숲길 사이로 고개를 드는 반석들과 와폭, 소는 장마기간 중에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는다.
두타산의 뜻이 ‘속세의 번뇌를 벗어나 맑고 깨끗하게 불도를 닦는 산’이라 했던가? 불심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등반으로 도를 닦는 김낙인(35세, 경원전문대 OB)씨와 병품암으로 향한다. 무릉계곡의 병품암에 처음 길을 내고자 나선 것은 치열한 벽 등반만을 추구해 온 청죽산악회였다.

청죽산악회는 1990년 무릉계곡으로 여름휴가차 들러 병풍바위를 보고 바로 ‘청죽길’을 개척했다. 벽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업(業)으로 인해 주객이 전도되는 것은 등반가의 당연한 이치인 듯싶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00년 7월부터 약 2년 동안 매주 그들은 병품암에 추가 작업을 했다.
그 결과 2002년 6월 18개 루트를 개척했고, 100여 명의 등반가들이 모인 가운데 개척보고회를 가졌다.


벽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업 24회에 걸쳐 먼 거리를 이동하며 연인원 200여 명이 고생했다고 한다. 또 300여개 볼트를 일일이 망치질을 해서 설치했고, 특히 바위틈에 끼어 있는 낙석들과 잘 벗겨지지 않는 이끼를 제거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루트개척 작업의 어려움보다 거리의 문제가 더 크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눈비에도 아랑곳없이 한 주도 빠뜨리지 않고 서울에서 4시간 여를 달려와야 했으니, 바위에 대한 사랑이 없었으면 공사장에서 망치질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무릉반석에서 잠시 쉬었다. 14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계곡은 ‘무릉선원 중태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台泉石 頭陀洞天)이라는 글을 새겨 놓았다.

그래서 무릉계곡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릉반석에는 온통 등산인들이 새겨놓은 글로 가득 차 있어 양사언의 글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다시 길을 나섰다. 평탄하고 유순한 계곡을 50여 분 오르자 계곡너머 마치 병풍을 펼친 듯 내려다보는 수직의 바위벽과 대면했다. 우리가 오를 곳이 저곳이다.

이 암장은 폭 100여 미터, 높이 70여 미터의 거대한 수직 벽이다. 첫 대면은 그리 험악하지는 않지만 수직과 오버행의 설렘을 갖기에는 충분했다. 설악산의 암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고 정이 가는 바위다. 서둘러 장비 착용을 마치고 김낙인씨가 등반을 준비한다. 그가 오를 곳은 심권식씨가 개척한 ‘배고픈 길(5.10b)’이다. 등반길이 53미터의 두 마디 루트다. 암장 중앙의 디에드로 형태로 크게 갈라진 틈새를 수직으로 등반해야 하는 루트다. 첫 마디는 30미터로 5.9급 정도로 양호하다.

 


크랙에 양쪽 날개가 형성되어 있어 손과 발을 쓰기에 편하다. 두 번째 마디는 등반을 종료하기 직전의 오버행 구간이 고빗사위이며 5개의 볼트가 설치되어 있다. 그의 등반은 참 가벼워 보인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매끈한 동작으로 밸런스를 잡아간다. 하지만 그의 매끈한 등반 뒤에는 남모르는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그것은 암벽등반의 득도와 같은 경지인 5.14급을 향해 수행을 하는 불자와 같은 등반가의 마음이다. 그의 등반세계는 높지 않지만 어렵다. 아니 높이와 상관없이 험난하다.

단 1주일만 쉬어도 금세 들통 나는 것이 암벽등반이고 보면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벽으로 향한다.

“하루에 3000개 정도의 홀드를 잡아요.” 기자는 3000개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매일 20킬로미터씩 심장을 벌렁거리며 뛰는 것이고, 드러누우면 바로 무념무상의 꿈나라로 향하는 것이고, 하루 24시간을 벽만 생각한다는 의미다. ‘배고픈 길’에서 ‘비몽사몽’까지 ‘아름다운 세상’(5.11b)을 오르기로 했다.

길이 27미터의 한 마디 루트로, 오버행의 틈새 루트다. 암장 중앙의 크랙 바로 좌측에서 시작되며 오버행 천장 우측으로 갈라진 틈새를 올라야하는 지구력이 필요한 루트다. 이 길은 전체적으로 볼트를 설치했으나 프렌드 3~6호를 천장 부근 크랙에 설치하면서 올라야 한다. 등반하는 사이 조금씩 벗겨지는 하늘 사이로 멀리 두타산의 비경이 왈칵 달려든다. 아찔한 고도감이다.

오버행 크랙을 쉽게 넘어선 그는 최대 고빗사위로 진입한다. 흐르는 틈새 홀드를 마찰력을 이용하여 잡고 등반하는 것이 관건이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마지막 쌍 볼트에 도착한다. 이어 이용일(39세·아프로산악회)씨 등반이 이어졌다.

이용일씨는 등반을 몇 해 쉬어선지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끝까지 해낸다. 양갱이 두개와 빵을 나눠 먹으면서 좀 쉬기로 했다.

“틈새 등반의 천국이네요.”
“지금은 모두 페이스 등반을 추구하는데, 이곳을 등반하면 바위를 처음 배울 때 생각이 나네요.” 김낙인씨는 오랜만에 해보는 틈새등반이어선지 물 만난 고기마냥 신이 난다.

초크로 분칠한 그의 손이 향하는 ‘비몽사몽(5.12a)’은 비교적 어려운 루트다. 이곳은 길이 52미터의 두 마디 루트다. ‘배고픈 길’ 바로 우측에서 시작되는 첫 마디는 페이스와 틈새 루트며 오버행으로 시작된다. 고도의 균형 감각이 필요한 루트다. 두 번째 마디는 칸테의 우측으로 돌아가 오르게 된다. 볼트 1개를 지나 암각의 슬링을 통과해 칸테와 페이스를 이용하며 올라야 한다.
고도감이 대단한 구간으로 과감성이 요구되는 곳이다. 등반열기에 웃통을 벗어던진 김낙인씨는 등반에 집중한다. 그의 오름짓이 아주 자유로워 보인다. 그곳에는 등반자와 바위와의 교감만이 있을 뿐. 그 사이엔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취재진은 계곡에서 조금 쉬어가기로 했다.

문득 현대 무용가 홍신자씨의 말이 생각난다. ‘채우며 산 35년, 비우며 산 28년’ 장맛비에 불어난 계곡이 적당한 수위를 위해 계곡물을 비워내듯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등반을 해야 되지 않을까.

 

청옥산 병풍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