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10 인수봉 궁형길
지난 10.2 바우사랑에 회원 가입을 하고, 이틀 후 궁형길 공지가 올라왔을 때 망설임 없이 신청했습니다.
물론 궁형길 최고 난이도가 11b로서 이 정도면 내 등반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후등으로 올라가는 것이기에 어떻게든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제 바위 경력은 짧지만 경력에 비해 등반 횟수도 많았고, 그동안 간현암장 같은 곳에서 5.10급 이상을 리딩방식으로 몇 차례 등반을 한 데다 춘클리지, 대둔산 등 몇 군데 리지 코스 중에서 5.10급 대여섯개 마디를 크게 힘들지 않게 등반한 터여서 제 스스로 등반 능력을 10a 중급 수준으로 후하게 매기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인수봉은 인수리지, 인수B.C, 비둘기, 고독길 등 난이도가 낮은 곳으로 올랐기 때문에 10a 이상은 등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궁형길 신청 이후 내심 많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궁형길 등반모습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을 찾아 보며 도상훈련과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게 됩니다.
'10.10.10(일) 첫등반에 늦지 않으려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약속장소인 도선사 주차장에는 만나는 시간보다 보다 약 20여 분 빠른 8시10분에 도착을 합니다.
탐방지원센터 옆 등나무 아래에서 회원들이 모인다는 것을 알고, 그곳에서 회원들을 기다리다 뒤에 오는 회원들 몇몇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눕니다.
바우사랑에 가입 후 첫 등반에 참석하기 때문에 모두 모르는 분들이고, 오로지 한 명 저를 바우사랑에 소개해준 분만 아는 얼굴이네요.
오늘 등반에 나서는 회원들이 모두 22명이라 회원들을 궁형, 의대, 동양, 인수A.B 등 5개 루트로 나누어 배정을 합니다.
미니님은 인수B길로 정해졌는데, 이 루트는 전에 한 차례 등반한 곳인데다, 미니님 정도 등반 능력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을 합니다.
조별 배정을 마치고 곧바로 인수대슬랩까지 어프로치에 들어갑니다.
대원들이 하루재를 넘어서고 있군요.
8시55분에 하루재를 넘어 인수봉 아래 야영장을 지나치는데 많은 수의 천막들이 쳐 있는 것을 보게 되고, 오늘 인수봉에 꽤 많은 클라이머들이 몰려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인수대슬랩 아래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오아시스를 향해 대슬랩을 오릅니다.
이 과정에서 이론적으로 이해만 하고 있었던 피치등반에 대해 확실히 체험을 하면서 익히게 됩니다.
리지등반은 많은 인원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대부분 난이도가 없는 곳에서는 등강기를 사용하여 등반을 하고, 후등자 확보도 경력자 1명이 여러 명씩 확보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피치등반에서는 선등자가 세컨을 세컨은 3등반자를 3등반자는 그 다음 등반자를 확보하는 식으로 진행을 합니다.
대슬랩을 올라 오아시스에 당도하니 역시나 의대길, 궁형길, 인덕길, 인수A 할 것없이 각 루트마다 클라이머들로 넘쳐납니다.
우리는 배낭을 한 곳에 모아 놓고 등반 순서를 정하고 등반을 시작합니다. 저는 네번째로 등반을 시작하게 되네요.
저는 어택배낭에 물과 먹을거리, 약, 지갑 등을 챙겨 넣습니다. 배낭을 매는 것은 등에 아무 것도 없으면 뭔가 허전하여 항상 배낭을 매고 다니는 오랜 습관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등에 나선 강 대장은 첫번째 마디와 두번째 마디는 나누지 않고 한번에 첫마디로 끊습니다.
제가 박 부등의 후등자 확보로 첫마디를 오르는데, 첫마디는 최고 난이도가 5.8인 평범한 크랙으로 조금도 어렵지 않게 등반을 마칩니다.
사진 중앙 첫마디 확보점에 세컨은 선등자 빌레이를 보고 있고 저는 5등반자 이른바 말구 빌레이를 보고 있는 모습이 잡혔네요.
첫마디에서 오아시스와 대슬랩을 내려다 보니 많은 클라이머들이 등반에 열중하고 모습들이 잡힙니다.
두번째 마디는 좌향 크랙으로 레이백 자세와 손, 발 재밍을 번갈아 가며 등반을 시작합니다.
두번째 마디 처음과 끝 구간은 어렵지 않았으나 중간지점 바짝 선 곳을 넘어서는데 쉽지 않고 펌핑이 오기 시작하는군요.
6개월 이상 어깨 통증으로 고생하느라 운동을 못했던 것이 펌핑의 주요 원인이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일에 몸을 의지하고 연신 어깨와 팔을 털어 냅니다. 급기야는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자일을 잡고 오르려고 하는데 그것마저 잘 되지 않고 허둥댑니다.
나중에 기억을 떠올려 보니 궁형길을 등반하던 어느 클라이머가 오른발을 벽에 붙이고 밀면서 올라가는 것을 봤는데 여기서 그런 동작으로 올라가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하강을 하여 오아시스에서 다른 팀 등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떤 클라이머가 같은 자세로 올라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두번째 마디를 어렵게 통과하여 자기확보를 하고, 곧바로 후등자 확보를 준비합니다. 이때 생각하기도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후등자 등반 자일을 빌레이 장비에 연결하는데 거꾸로 연결하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자일 연결 후에도 등반 자일을 당겨 빌레이 장비가 자일을 잡아 주는지 확인하는 것도 빼먹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이미 다 숙지하고 있었고 그동안 등반하는 과정에서 습관적으로 해오던 것들이기 때문에 몸에 베어 있는 데도 엄청난 실수를 하는군요.
그러면서 빌레이 장비가 왜 잘 작동이 되지 않는지 이상하게 생각을 하면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박 부등이 저의 실수를 지적하는 통에 곧바로 시정했기 망정이지 그대로 등반을 했더라면 큰 사고로 이어 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인수A길을 등반하고 있는 선등자인데 세번째 마디 난이도가 5.8로 되어 있는데 이게 무슨 5.8이냐고 큰 소리를 냅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정통 인수A길이 아닌 인수A 변형길로 잘못 들어 그렇게 어렸웠다고 하네요.
두번째 마디에 자기확보를 하고 후등자 확보를 보고 있네요. 제 옆이 박 부등인데 첫 인상부터 호감이 가는 좋은 사람 같습니다.
맨 후등자가 두번째 마디에 오르고 저는 세번째 마디 등반 순서를 기다립니다.
두번째 마디에서 인수B길 쪽에서 미니님 소리가 들려 당겨보니 미니님이 세컨으로 등반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후등자를 올리고 박 부등이 세번째 마디 등반하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세번째 마디는 발 딛는 곳이 흐르는 구간이지만 언더크랙을 레이백으로 뜯으면서 밸런스를 잡고 가면 저 앞 오버행까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어 보입니다.
박 부등이 세번째 마디 크럭스에 당도했네요. 보기와는 다르게 등반자 앞에 있는 바위가 오버행인데다 발 아래는 바위가 흐르기 때문에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오버행 바위는 자유등반으로는 오르기는 불가능해 보이고 퀵드로우를 잡고 오른 발을 슬링에 걸고 일어서야 하겠다는 등 나름대로 등반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세번째 마디 등반에 나서 크럭스 구간까지 크게 어렵지 않게 진행을 했는데, 왠걸 오버행 크럭스 구간에서 퀵드로우를 잡고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아무 것도 잡고 일어설 힘조차 없을 정도로 펌핑아웃이 되고 맙니다. 위에서는 안타까워 하며 여러 방법을 제시하지만 내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자일에 대롱대롱 매달려 쉬게 됩니다.
사실 이 정도 인공구간은 많은 경험도 있고 해서 어렵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 앞에서 힘을 쓸 수가 없으니 죽을 지경입니다.
한동안 그렇게 쉬고 난 후 젓 먹던 힘을 내어 겨우 일어서 오버행 바위를 올라선 후 박박기다시피 힘겹게 오릅니다.
제가 완전히 펌핑아웃되자 저에게 후등자 확보를 보지 않고 쉬게 하는군요.
저는 쉬면서 물과 먹을거리를 먹으며 체력을 충전합니다. 내 뒤 후등자도 크럭스 구간을 어렵게 올라오고 있군요.
아래에서는 인수A길 등반자들의 모습이 보이네요.
아예 손을 놓고 매달려 있습니다.
정상부는 단풍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군요. 다음 주 정도면 저 붉은 기운이 더 할 것 같습니다.
먼저 등반을 마친 대원들이 제 뒤 등반자가 잘 올라 올 수 있도록 응원을 하고 있네요.
말구가 올라서면서 오늘 궁형길 등반은 마치고 오아시스로 하강을 하게 됩니다.
오늘 저랑 함께 등반을 한 대원들입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강용규 대장, 박영랑 부등, 이상남님, 그리고 김대욱님입니다.
하강을 하기 전에 사진도 찍습니다.
두번을 꺾어 하강을 하는군요. 박 부등이 두번째 하강하는 모습입니다.
모두 하강을 마친 후 준비해온 먹을거리를 먹으면서 쉽니다.
그렇게 쉬다가 2시반 조금 지나 영(0)길로 이동하여 첫마디 슬랩을 오릅니다. 난이도가 10b인데 이 길은 이상남님이 선등으로 오릅니다.
많은 클라이머들이 오른쪽 맨 위쪽 의대길, 그 아래로 우리가 등반한 궁형길, 인수A길에 새까맣게 붙어 있네요.
선등자가 슬랩 중간 지점에서 수없이 슬립과 추락을 먹습니다. 그렇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을 합니다. 그런 근성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우리 조가 등반에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구조용 헬기가 대슬랩쪽으로 다가섭니다. 부상자가 발생했나 보군요.
선등자가 가까스로 크럭스 구간을 벗어납니다.
구조용 헬기가 굉응을 내뿜으며 부상자 구조활동을 하고 있네요. 이렇게 가까이서 구조활동을 하는 모습은 처음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은 낙석과 낙비가 유난히 많았군요. 오전에는 의대길에서 길이가 1미터 이상되고 폭이 50센티미터쯤 되는 큰 바위가 오아시스를 덮쳤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고, 우리 등반하는 곳으로 두 차례나 장비가 떨어졌으나 머리 위로 튕계 나가기도 했으며, 인수B길에서도 낙비가 있었다고 하네요.
박 부등이 영(0)길 첫마디를 등반합니다.
등반 자일이 늘어지니 "텐"을 소리치는군요. 옆에서는 선등자했던 이상남님이 하강을 하네요.
강 대장은 텐션을 안 주기로 유명하다는 군요. 제가 후등으로 등반을 하면서 살펴보니 손에 어느 정도라도 잡히는 홀드가 없어 발을 정확히 쓰지 않고는 저 곳을 오르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저는 박 부등의 텐을 받고 겨우 크럭스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마지막 등반자 확보를 보는 사이 앞 등반자가 하강을 하는군요.
다른 조는 인수봉 정상까지 올라갔군요.
오늘 등반을 마치고 하산을 하는 중입니다.
오늘 각 루트로 나누어 등반을 한 대원들이 한 곳에 모두 모여 뒷풀이를 합니다.
서로 다른 길을 갔다왔지만 이렇게 한 곳에 모여 등반 후일담을 얘기하면서 회원들간 우의를 돈독히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이날 함께 한 회원들 모두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줘 첫 등반과 첫 대면이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선지 이날 꽤나 술을 많이 먹었습니다.
오늘은 정말 큰 경험을 했습니다.
현재의 저의 실력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쉬운 루트만을 다니면서 참 쉬었다고 얘기해왔던 지난 날의 내 모습을 되돌아 보면서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이날 뒷풀이에서 인수A길을 등반한 선등자는 제가 궁형길 네번째 마디 크럭스에서 무려 반시간이나 매달려 있었다고 하는군요.
사실 여부를 떠나 아무튼 오랫동안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럼으로써 다른 등반자들에게도 피해를 주었으니 어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완전히 습관이 되어 몸에 베다 못해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확보 시스템을 실수한 것은 곱씹고 또 곱씹어도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제 자신에게 변명처럼 6개월간 계속된 어깨통증 치료를 마친지 한 달여 밖에 지나지 않았고, 지난 8.23 하지정맥류 수술을 한 후 1달 보름이 지나지 않아 몸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서 그랬던 것이고 버벅대다 보니 다른 대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통에 허둥대다가 그런 것 아니겠냐고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실력을 정확히 가늠하지 않고 과대평가하여 덜컥 궁형길을 오르려고 했던 나의 오만 내지 자만을 허투로 볼 일이 아니겠습니다.
이제 제 실력을 냉정히 평가하고 그 실력에 맞는 루트를 가려야 할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덧붙여 조그만 실수라 하더라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매사에 신중하고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좀더 등반실력을 갈고 닦을 수 있도록 필요한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어젯밤은 도통 잠에 들 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