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마당/루트정보

만경대릿지

팬더마당 2009. 12. 2. 13:44



 ◇ ‘엄마바위’로 이름 붙여진 바위. 바위를 껴안고 돌아야 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크랙이 여러 갈래로 나 있어 어느 쪽을 택해 올라도 된다. 위문에서 시작해 올 때는 바위 위쪽의 나무에서 20m 하강을 해야 한다.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서울의 수은주는 영하 10℃ 안팎까지 떨어졌고 사람들은 장롱에 넣어두었던 두툼한 파카를 다시 꺼내야 했다.
녹아 흐르는 춘설의 계곡이 밤 9시 뉴스에 방영된 지 불과 며칠만의 일이었다.
기상 캐스터는 “이 정도면 꽃샘추위가 아니라 한겨울이죠. 하지만 내일 모레면 다시 봄이 찾아올 테니 걱정마세요”라며 텔레비전 앞에 모인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안심할 수가 없었다.
취재 약속을 한 날짜가 바로 내일이었기 때문이다.
박석희(한국산악회등산학교 강사)씨는 “다들 알아서 챙겨오겠죠”하며 대수롭지 않게 기자의 확인전화를 끊었다.
만경대리지는 주말이면 줄을 서서 긴 정체를 겪어야 하기에 평일 취재를 위해서 한국산악회등산학교 동문회(동문회장 한영길)의 도움을 받았다.
박석희씨를 비롯해 14기와 15기 출신 장희정·조영석·장경순·윤성식씨 등 5명이 모였다.
다행히 며칠 동안 노란 필터를 낀 것 같던 하늘은 화창하게 맑았지만 우이동에서부터 코끝이 쨍할 정도로 날선 바람이 불었다.

자연이 만든 성, 만경대리지


‘동동거리느니 빨리 등반하고 내려오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발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만경대리지는 깔딱고개에서 곰바위를 지나 만경대~낙타바위~병풍암~용암문에 이르는 능선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깔딱고개로 오르는 길은 90년대 중반부터 자연휴식년제로 막혀있어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보통 위문에서 용암문 구간을 오르내린다.
이곳은 14성문으로 이루어진 북한산성의 일부로, 만경대리지는 예부터 자연이 만든 천연 성 역할을 해온 것이다.
현재의 북한산성은 조선 숙종 37년(1711년)에 축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본래 백제의 개루왕(132년)때 처음 성을 쌓았다가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신라 진흥왕에게로 영토의 소유권이 옮겨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북한산성이 세워지기 시작한 때는 조선왕조에서 사회 전반적인 변화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지 1세기가 지난 시점부터 북한산성 축조가 시작되었는데, 전쟁 이후 외국 문물 유입으로 활발해진 경제활동과 실학사상의 태동, 정쟁에 따른 정치불안과 관료들의 전쟁에 대한 두려움 등이 북한산성 건설논의를 불러온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산성의 위치와 형태로 보면 수비나 전진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피란성에 가깝다.
그것은 조선의 수도 한양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데, 외침으로부터 4대문 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기보다 유사시에 그리로 피난을 가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각 성문에 빗장을 걸 수 있는 구멍을 보면 성곽 안쪽에서 문을 잠그도록 되어있다.
기자가 처음 북한산성을 찾았던 초등학교 꼬맹이 시절, 그 성문을 보고 언뜻 이상한 생각이 들었었다.
그때까지 학교에서 배운 웅비과 긍지로 가득 찬 한반도의 역사가 고작 문을 걸어 잠그고 침략자가 떠나기를 기다리는 초라한 모습이었을까. 우물이 300여 개나 있었다는 북한산성의 안쪽에는 누가 들어갈 수 있었을까. 얼마 전 밝혀진 서울 여의도의 호화스런 지하벙커와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분명한 건 성을 쌓은 사람과 성을 쌓자고 한 사람이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적 162호로 지정된 북한산성은 90년대 초반부터 서울시와 고양시 등에서 많은 돈을 들여 성문과 성곽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등산인구가 몰리며 성곽을 밟고 지나다닌 나머지 많은 부분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원 주체가 지자체에 따라 달라 결국 모양과 재질이 제각각인 이상한 성으로 변했다.
2001년부터는 고양시에서, 2004년부터는 서울시에서 그나마 예산부족으로 복원이 중단되었으니 북한산성의 역사도 순탄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좆다 보면 바위는 단지 바위가 아니고, 흙과 나무 하나도 예사롭지가 않다.
도선사 뒤로 돌아 용암문까지 곧장 올라 등반을 시작하기로 했다.
평일임에도 신도들로 북적거리는 가운데 은은한 염불소리만 찬 공기를 갈랐다.
쉼 없이 삼십 분여를 올라 용암문에 닿았다.
출입금지 표지가 분명한 만경대 리지는 성곽 보호라는 이유도 있지만, 주말이면 북새통을 이루는 등반자들이 확실한 안전장비 없이 등반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 북한산에서 가장 사고가 많은 구간이라서 출입을 막는다.
최근 관리사무소에서 만경대를 비롯해 원효리지, 비봉 등에 안전요원을 배치하고 막무가내식 등반자들은 돌려보내고 있다.
흰 펜스를 넘어 성곽을 따르는 능선을 올라 10여 분이면 리지의 초입인 계단식 바위에 닿는다.
배낭을 풀고 장비를 꺼내는 사이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이 땀으로 젖은 온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등반속도를 내기 위해 기자와 윤성식씨가 한조로 앞서 가고 박석희씨와 장희정·조영석·장경순씨가 따로 팀을 이루어 뒤따르기로 했다.

 ◇ 피아노바위는 만경대리지의 백미지만 가장 많은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로프와 장비를 사용해 횡단하는 것이 안전하다.


피아노바위 치고 엄마바위 껴안고

계단식 바위는 어렵지 않아 별다른 확보물을 설치할 필요는 없지만 장갑을 끼고 오르는데도 손이 곱아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잡고 디딜 곳이 많은 바위를 25m 올라 다시 60도 경사의 바위를 5m쯤 내려서 소나무가 있는 너른 테라스에서 피치를 끊는다.
후등자 확보시 간접확보법을 사용하면 암각에 로프가 쓸리기 때문에 칸테까지 올라서 몸으로 직접확보하는 것이 좋다.
어렵지 않아 로프를 고정시키고 티블록 등의 장비를 사용해 연등으로 올라도 된다.
테라스에서 바라보이는 벽은 병풍암이다.
길은 병풍암을 끼고 이리저리 돌며 이어진다.
“길을 잘 모르겠으면 로프 없이 갈 만한 곳을 찾으면 되겠군요.”캠과 너트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박석희씨의 말은 역설이었다.
책처럼 펼쳐진 디에드르 크랙을 7m 정도 올라 나무에 확보하면 곧 만경대리지의 백미인 피아노바위와 이어진다.
발 아래로 북한동 계곡과 멀리 의상봉 능선 너머 자유로까지 시원스레 경치가 트였다.
피아노바위란 피아노를 치듯 덧바위를 잡고 트래버스 하는 구간으로 이곳 말고도 만경대리지 곳곳에는 ‘엄마바위’ ‘낙타바위’ ‘스타바위’ 등 재미있는 이름이 붙어있다.
트래버스를 시작하는 지점에서 하켄에 로프를 통과시킨 후 덧바위를 잡고 발길을 뗐다.
홀드가 손에 꽉 잡히는 곳이라 어려움은 없지만 아래가 수십m 낭떠러지라서 초보자들은 위축되기도 한다.
때문에 선등자가 먼저 건너가 반대편 나무에 로프를 고정하고 후등자는 확보줄을 통과시키고 등반하거나 라스트와 함께 양쪽에서 확보를 해 주는 것이 안전하다.
취재팀은 로프를 고정시키고 한 사람씩 건너갔다.
“로프가 꼬였어요.”장희정씨가 중간에 설치한 캠에 확보줄을 통과시키는 것을 잊고 건너오다 어렵게 다시 몸을 움직여 카라비너에 걸린 확보줄을 정리했다.
봄볕이었지만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체감온도를 계속 낮췄다.
일행은 테라스에 모여 곱은 손을 녹였다.
이어진 길은 45도 경사의 쉬운 슬랩을 올라 얇은 실크랙을 레이백으로 오르는 것이다.
실크랙 오른쪽으로는 닥터링(바위를 인위적으로 깨서 홀드를 만드는 것)이 되어있어 어렵지 않지만, 지난 사람이 많아 바위가 미끄러워 주의해야 한다.
실크랙을 10m쯤 올라 피치를 끊으면 되는데, 종료 지점의 쌍볼트를 누군가 뽑아놓았다.
주변 크랙을 이용해 캠으로 확보하고 이퀄라이징하면 되지만 꼭 필요한 지점의 볼트가 훼손된 것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누가 이런 짓을….”
뒤이어 올라온 사람들이 혀를 찼다.
이제 병풍암 정상에 올라서는 일만 남았는데, 한 사람이 지날만한 통로처럼 되어있는 길을 오른쪽으로 걸어가 정상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슬랩을 오르거나 아니면 확보지점 위쪽으로 난 넓은 크랙을 따라 올라도 된다.
크랙 사이에 박혀있는 촉스톤은 흔들리므로 큰 힘을 싣지 않아야 한다.
병풍암 정상에 올라서니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클라이밍 다운을 하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취재팀은 로프를 각자 사려 안자일렌을 하고 크고 작은 바위를 넘어 병풍암에서 이어지는 안부를 지났다.
곳곳에서 성터의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어떤 슬랩에는 발이 전부 들어갈 정도로 계단이 있는 곳도 있었다.
옛 사람들이 북한산성을 만들며 파놓은 것일 테다.
그들은 짚신을 신고 이곳을 오르내렸을 테니 지금 클라이머의 원조인 셈이다.
‘엄마바위’라고 불리는 곳은 마땅히 잡을 곳 없는 바위를 껴안고 발을 옮기는 구간이 있어 재미있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크랙이 여러 갈래로 나 있어 장비만 있다면 어느 쪽으로 올라도 상관없다.
박석희씨가 줄을 묶고 크랙에 확보물을 설치하는 사이 반대편에서 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클라이밍다운을 하며 내려갔다.
취재팀은 이곳을 올라 너른 바위턱에 모여 따듯한 차와 간식을 먹고 가기로 했다.
그나마 나무가 우거져 바람이 덜 불었다.
“저는 50살 전에 인수봉 한번 올라가보는 게 소원이라 등산학교에 들어왔어요.”“소원 풀었네요. 그럼 다른 소원을 또 만들어야지.” 등산학교 졸업 이후 만경대리지가 두 번째인 윤성식씨는 북한산에 올 때마다 인수봉만 바라보면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한국산악회등산학교는 자체 산악연수원(원장 김성봉)에서 산림청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등산교육기관으로, 역사를 거슬러 가자면 1947년 가을 록클라이밍강습회가 시초지만 그동안 산발적으로 이어져오다가 9년 전부터 다시 정기적으로 연간 2천여 명에게 체계적인 등산을 알리고 있다.
이후로 위문까지는 특별히 어려운 구간은 없기에 일행은 로프 1동만 사려들고 각자 걸어갔다.
V자 형태로 파진 바위 앞에는 반대편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모여 한 사람씩 건너가느라 정체를 빚고 있었다.
취재팀은 나무에 로프를 걸고 아래로 15m쯤 하강해 우회로를 따르기로 했다.
며칠 전까지 질퍽하던 양달의 흙이 얼어붙어 걷기는 편했지만 낙엽 아래로 다시 빙판이 형성된 곳이 있어 조심해야 했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우회로가 많아진 것 같아요.”박석희씨가 앞장서 이리저리 복잡한 바윗길을 따라 갔지만 결국 ‘뜀바위’로 이름 붙은 곳은 모르고 지나쳐버렸다.
지금까지 맞은 바람을 생각하면 일행 모두 다시 거꾸로 돌아갈 생각은 들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 만경대 앞, 위문까지는 숲길을 따라 5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다 왔는데 기념사진 한 장 찍고 가야죠.”
“올해 첫 바위가 아주 매웠네 그려.”
만경대 아래 바위턱에 모여 앉은 일행의 시선은 백운대보다 인수봉에 가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봄이 올 것이라는 사실에 그들도 들떠있는 것 같았다.

당신은 어느 계절에 서 있나요

누군가 ‘봄 산’에 대해 물었을 때 떠오르는 것은 따스한 바람, 녹음, 몽우리를 틔우는 꽃과 팔랑거리는 노랑나비쯤 되려나. 하지만 또 다른 봄의 풍경이란 부연 황사와 눈 녹아 질퍽거리는 음지의 땅, 간간히 남아 마지막 겨울을 태우는 헬쓱한 잔설, 작은 불길에도 빠직거리며 타오를 건조한 숲이 아닌가요. 하여 그대의 계절을 묻는다.
당신은 어느 계절에 서있나요? 혹, 가는 겨울과 오는 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눌러 앉지도 서서 나아가지도 못하고 있지는 않나요. 당신이 주저하는 사이 이미 봄은 올 테고 여름과 가을과 겨울도 마찬가지. 계절이 없는 삶을 생각해봐요. 당신의 인생이 매일 여름이라면, ‘영혼이 무기력해지는 적도기단, 그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시를 쓰지 못한다’던 시인의 말처럼 굴곡 없는 적도의 계절이라면 말이죠.이제 손꼽을 몇 밤만 지나면 산마다 지천으로 진달래며 개나리며, 다른 근심 없이 자라는 새 생명들에 통통히 물이 오를 테요. 지금은 질퍽한 응달에도 부연 흙먼지가 일고 황사 걷힌 들판엔 힘찬 빗줄기가. 그 틀림없는 대자연의 약속을, 아파트 철문에 붙여놓은 어느 중국집 전화번호처럼 잊고 지내도 그만일 테지만 자장면을 기다리는 배고픈 애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사뭇 가슴 설레지 않나요. 산으로 가요.
 ◇ 45도 경사 슬랩을 트래버스 하면 레이백 크랙이 나타난다. 등반 중인 박석희씨와 확보 중인 장희정씨.


INFORMATION
북한산 만경대리지 길잡이


만경대는 백운대, 인수봉과 함께 북한산의 본 이름인 삼각산(三角山)을 이루는 봉우리다.
만경대리지는 본래 깔딱고개에서 시작해 곰바위~만경대~병풍암~용암문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말한다.
하지만 깔딱고개~곰바위 구간은 등반성이 낮고 자연휴식년제 구간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대부분의 등반객들은 위문이나 반대편 용암문에서 시작하는 약 1km 구간의 능선을 등반한다.
만경대리지는 3인이 등반할 경우 50m 로프 1동과 캠 3~4개, 카라비너 3~4개, 리지화, 하강기, 간이 안전벨트 정도면 충분하다.
많은 사람들이 장비 없이 등반하기도 하지만 추락시 위험한 구간이 많으므로 꼭 등반장비를 챙겨야 한다.
특히 피아노바위 트래버스 구간과 엄마바위 등에서 추락사고가 많이 일어나므로 확보 등 기본적인 등반 수칙을 지켜야 한다.
만경대리지는 주말이면 사람들이 몰려 혼잡과 정체를 이룬다.
장비가 있을 경우 우회로를 생각해 볼 수도 있으며, 실제로 많은 구간 우회로가 나 있다.
기존 루트에도 볼트 등 고정확보물이 뽑혀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캠 등 확보장비는 꼭 있어야 한다.
등반 중 물을 구할 곳은 없으며 산행 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등반 시간은 3인이 2시간이면 되나 정체될 경우와 휴식시간을 감안하면 이보다 더 걸릴 수 있다.
최고 등반 난이도는 5.5~5.6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