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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설악 등선대

팬더마당 2010. 5. 14. 21:41

남설악 등선대



위로 날아가 들여다보는 듯한 황홀경의 기암릉
흘림골매표소~여심폭~등선대~12폭~용소폭~오색약수

▲ 등선대에서 주전골쪽을 등산객들이 바라보고 있다. 등선대는 사방으로 기암들이 에둘러 있다.

등선대로 오르는 흘림골 계곡을 걷는 발걸음은 비록 급한 오르막이지만 가볍다. 지도로 보아 짤막하고 단순한 길이기 때문이다. 도상거리로는 1km, 실거리는 아무리 길게 보아도 1.5km에 불과하다. 그리 오래지 않아 절경을 본다는 기대감으로 매표소 앞을 지났다.

국도변에 급비탈 좁은 곳에 옹색하게 세워진 매표소 주변의 분위기로만 보아서는 그 안에 무슨 별난 볼거리가 있겠나 싶지만, 등선대에 올라 경치를 본 이들은 100% 천하절경임을 반복해 강조했다. 아직 단풍이 들려면 멀었는데도 산행객을 실은 관광버스들이 줄을 잇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요컨대 단풍과 무관하게 이곳 등선대 풍치는 사철 두고 남다름이 분명하다.

▲ 등선대 꼭대기에 올라서서 동쪽 아래의 기암봉 군을 구경하고 있는 어느 등산객.

매표소 안으로 들어 잠시 오르자 순식간에 원시 풍광으로 변한다. 오래도록 풍상을 겪으며 속이 썩어들어 거의 껍질만 남은 고령의 주목들이 여기저기 패찰을 달고 섰으며, 나이테를 보니 300~400년은 묵었음직한 거대한 전나무가 쓰러져 푸른 이끼로 뒤덮여가고 있다. 계곡은 작지만 품어 안은 것은 풍부하다.

흘림골~등선대~주전골로 이어지는 등선대 코스는 20년쯤 전 주목 도벌사건 이후 통제를 시작했다가 작년 9월20일에 처음 개방됐다. 개방 직후부터 이 탐승로는 경관의 뛰어남과 산행로의 아기자기한 재미, 한나절로 끝낼 수 있는 적절한 거리 등의 덕분으로 오색을 오랜만에 달뜨게 했다. 주민들은 “작년 가을에만 수만 명 관광객이 다녀갔는데, 오색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것 같다”고 말한다.

 

등선대 코스는 실은 오색 주민들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 개방한 코스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오색 주민들은 오색약수 분출량이 거의 정지되는 한편 금강산으로 관심들이 쏠리며 관광객 숫자가 크게 줄어들자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생계보장 차원에서 등선대 코스를 개방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오색 주민들이 이렇게, 분명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 것이라 자신하고 있었을 만큼 이곳 등선대 풍치는 특상급이다.

▲ 등선대 정상 풍경. 아직 안전시설이 돼 있지 않다.
계곡을 가로질러 작은 다리가 놓였다. 1년 새 산비탈의 어떤 곳은 깎이고 허물어져 내렸다. 설악산 관리사무소가 돌계단을 만드는 등 애를 쓴 흔적은 보이지만, 올해 단풍 인파가 한번 더 지나고 나서는 아무래도 대대적으로 정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다리로 다시 왼쪽 사면으로 건너서는 급비탈을 오르면 오른쪽 협곡 저 안 깊숙한 곳에 한 줄기 가는 물줄기가 벽을 건드리고 있는 여심폭포가 뵌다. 한자 표기가 ‘女心’ 아닌 ‘女深’인, 은근히 외설적인 이름이다. 몰려온 단체 등산객들 중의 리더격인 남자들은 어김없이 한 마디씩 야한 농담을 꺼내든다.

▲ 등선대에서 본 기암들.
설악산쪽의 폭포들은 불쑥 밖으로 드러낸 듯한 것이 많은 반면 이곳 점봉산 것들은 대개 깊이 팬 곳에 숨은 듯 자리 잡았다. “설악산이 남성 산, 이곳 점봉산은 여성 산이기 때문”이라고 길 안내를 자청한 전 남설악구조대장 이재영씨(48)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흘림골이란 여심에서 흘러내린 계곡이란 뜻이라는데, 아무튼 이곳 여심폭포에서 물줄기가 끊어지므로 수통에 물을 담아야 한다.

여심폭포 앞에 있는 아름도 넘는 흰 줄기의 나무는 희귀목인 엄나무다. 개두릅이라 부르는 엄나무 순을 따기 위해 이렇게 큰 엄나무도 사정없이 베어 넘어뜨렸던 예가 많다. 이곳은 많은 관광객이 수시로 드나들며 감시자 역할을 할 것이니 이 엄나무는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이다.

요란스런 여심폭포 앞을 떠나 등선대로 향했다. 물줄기는 끊어졌고 비탈도 심해진다 싶더니 평평한 안부 위다. 여기서 왼쪽 위의 등선대까지 올랐다가 되내려와 남쪽 12폭포로 하산하는 것이 거의 정석으로 굳어졌다. 거꾸로 산행해서 안 될 것 없지만 다리 힘이 갑절로 들 것이다.

작은 공터를 이룬 안부에 올랐다. ‘여심폭포 0.3km, 등선폭 0.4km, 등선대 0.4km’ 팻말이 서 있는 삼거리다. 등선대쪽으로는 사람들이 쉴새없이 오가고 있다. 그들을 따라갔다. 등선대 벽과 그 앞에 문설주처럼 선 기암 사이로 백두대간 주능선쪽 풍경이 들어앉는다. 길이 좁아서 툭하면 윗사람이 내려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등선대 기슭으로 다가서자 가파른 바위벽에 밧줄이 매어져 있다. 잡고 오르려는 이와 내려오려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 사다리를 놓던지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단풍철엔 ‘교통대란’이 일어날 것 같다.

바위를 오르는 일에 서툰 사람은 등선대 정수리로 올라서기도 또한 쉽지 않다. 때문에 아낙들은 태반이 포기하고는 되돌아서고 만다. 만약 등선대에 올라서 보았다면 안간힘을 써서라도 올라오길 정말 잘했다며 가슴을 끌어안게 될 것이다.

금강산 천선대도 저리 가라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다가 중청 지나 희운각쪽으로 내려가다가 소청봉에 서면 저 아래로 펼쳐진 공룡릉과 용아릉 기암봉들에 혼이 앗기고 만다. 이곳 등선대는 그들 용아릉이나 공룡릉의 기암봉 무리를 새가 되어 바로 위에 다가가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천화대 암릉을 해본 바위꾼들 이외는, 아마도 설악에서 이런 기막힌 조망점을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치솟고 패이고 휘거나 겹친 그 기이한 암봉들의 면면이며 숫자를 어떻게 헤아려 전할 수 있을까. 이곳의 풍광이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금강산 천선대 풍경도 이곳 남설악 점봉산 등선대에는 댈 것이 못된다는 이재영씨의 자랑이다.

 

금강산 천선대 주변은 날카로운 침봉들이 수백 개 총총히 몰려서 있는 기관이 자랑인데, 너무 침봉들뿐이라 좀 단조롭다. 그에 반해 이곳 등선대에서는 대청봉이며 점봉산의 부드러운 육산 능선과 우뚝한 기암봉들이 황금분할로 어울렸다. 게다가 오늘은 뭉게구름까지도 양념으로 곁들여져 오래도록 등선대 정상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여기서 보니 귀청봉은 정말 무슨 짐승 귀처럼 뾰족하게 솟았다. 대청봉에서 귀청봉에 이르기까지 설악산 서북릉이 전혀 다른 산인 듯 새삼스럽다. 구름이 지나며 서늘한 그늘이 서북릉 산록에 드리워지곤 한다.

등선대 위엔 많아야 20명 이상 머물기 어렵다. 때문에 밑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니, 눈치가 뵈서라도 오래 머물지 못하겠다. 사방이 빙 둘러 오금이 저리는 절벽이고 사람들은 떠밀듯 올라온다.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난간을 설치해야 할 것 같다. “이 경치에 반해서 벌써 세 번째 다녀간다는 사람도 보았다”고 등선대식당을 운영하는 이재영씨는 말한다.

안부로 되내려가자 막 올라온 사람들, 간식 먹고 물 마시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얼른 북쪽 계곡을 향해 내려갔다. 오름길보다 더한 급경사 돌길이어서, 그리고 왼쪽 저편에서 안개를 둘렀다가 훌쩍 걷어올리며 나타나곤 하는 침봉들을 흘깃거리노라 더더욱 발길이 조심스럽다.

▲ 주전골 12폭포 옆의 벼랑과 등산객들.

이곳에서 뵈는 기암봉들은 밑둥과 몸통, 머리통까지의 굵기가 별 차이가 없어, 거대한 신전 기둥 같다. 저기 내?외설악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이곳 남설악만의 기관이다. 정수리로 몇 마리 까마귀가 날아오르고 잿빛 안개로 밑둥을 가린 침봉들은 짐짓 신화적 분위기마저 띤다.

무명폭포 옆을 지나 길은 슬며시 다시 능선 자락 위로 치닫는다. 거기 능선 위에서 사람들이 한결같이 뒤를 돌아본다. 등선대와 그 일대의 침봉군들이 안개의 장막을 벗고 일제히 드러났다. 여기저기서 불끈 치솟은 침봉들은 장관이기도 하거니와, 그 사이의 공간에서는 엄청난 기운이 느껴진다.

 

고갯마루에서 계단길을 내려오자 이내 주전골 12폭포다. 과거엔 이곳 12폭포까지만 왔다가 되돌아 내려가야 했는데, 이제는 길이 통한 것이다. 긴 암반을 희뿌옇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흘러내리는 와폭인 12폭포 바로 옆을 따라 내려가면 널찍한 웅덩이 같은 암반 가운데에 옥색 물이 고인 옥녀탕이다. 몇 번 보는 풍경이지만, 아름답다. 주변 산록에 단풍이 물들면 물론 기막힌 절경이 된다.

‘용소폭 삼거리’ 팻말이 선 곳에 다다라 왼쪽 샛길로 내려가자 주전골 본류의 널찍한 풍광이 기다린다. 삼거리에서 멋모르고 곧장 오색으로 내려가면 이 풍경을 못 본다. 계곡가로 내려서서 왼쪽 위로 낸 등산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용소폭포가 바라뵌다. 실족사고가 하도 나서 밧줄을 쳐두고 출입금지 팻말을 붙여두긴 했지만, 사람들은 서슴없이 밧줄을 넘어 용소폭포가 잘 뵈는 암반으로 나선다. 그렇게 밧줄을 넘어가서라도 볼 만한 전형적인 폭포와 푸른 소가 잘 어울린 풍경이다.

용소폭을 보고 나서는 바로 위의 한계령 도로변 매표소로 빠져나가도 되지만 용소폭 삼거리에서 오색약수까지 이어지는 계곡 풍경을 버리기가 아깝다. 그러므로 다시 발길을 되돌리도록 한다. 이 계곡 이름이 왜 주전골인지 이재영씨가 설명해준다.

“여기가 왜 주전골이냐 하면 말이죠, 진짜로 저기 골짜기 안에서 동전을 찍어냈거든요. 제가 들은 얘긴데, 그리 오래 된 얘기가 아니예요. 누구네라곤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친구 할아버지 되는 사람이 저 안쪽 골짜기에 요새로 치면 위조 동전을 몰래 만들어 내오곤 했다고 합디다.”

주전골 내려가는 도중에 제2약수가 있는데, 저 아래 제1약수는 거의 물이 나오지 않으므로 이곳 제2약수 물맛이라도 보고 간다. 하지만 이미 이곳 제2약수도 예전의 오색약수 명성에 값하기엔 분출량이나 물맛이나 너무 미약하다.

계곡길은 제법 길고 양쪽 풍경이 역시 명불허전, 남달리 뛰어나 걷는 맛이 좋았다. 가다가 침봉 무리를 되돌아보거나 혹은 다리에서 골짜기의 크고 작은 바윗덩이들과 쓸려 내려오다가 걸린 나무둥치와 계곡가의 푸른 이끼, 짙은 숲이 어울린 정갈한 풍경들을 들여다보노라 걸음은 느려졌으나 산행 만족도는 100점 만점이었다.

가을 단풍이 절정일 때 오면 어떨까. 낮에는 사람에 치일 것이니 새벽 일찍 움직이라고 이재영씨는 조언했다. 그 시간대가 실은 경치도 가장 멋질 때라고 한다. 올해도 단풍 절정기는 아마도 10월10일 전후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가을 산불예방기간은 11월15일부터이므로 10월22, 23일 연어축제 때는 산행에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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