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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봉 벗길

팬더마당 2010. 5. 12. 20:51

북한산 인수봉 벗길/스무 살 청춘들이 만든 자유공간

글·사진 손재식 사진작가 (sohnbal@orgio.net)



 ◇ 취나드A 코스 왼쪽에서 취나드 B코스 정상을 향해 뻗은 슬랩 루트인 벗길 전경.


사랑과 우정 그리고 의리는 계속 우리들의 세상을 움직일까? 이것은 샘물과 같아서 아무리 퍼마셔도 줄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으로 감정과 의사를 전달하는 일이 가능해진 지금 한 번 반문해 볼 일이다.
특유의 공상으로 미래를 사유하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는 그의 단편에 인간의 흉내를 내는 기계를 등장시킨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물건들이여 그대들에게 영혼이 있는가? 지구상에 살아있는 유기체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야. 꿈에서 깨어나야 해’라고 궁시렁 대도록 만든다.
거기에 인공심장을 달고 사랑을 할 수 있느냐고 꾸짖는 놈이나, 기계인 주제에 상대를 반박하는 녀석들처럼 기계시스템과 인간의 지배 구조가 바뀔지도 모르는 미래를 암시한다.
안전을 위해 개발된 신장비들은 몸으로 때우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조차 쑥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장비의 발전에 따르는 등반의 대중화는 끊임없이 ‘순수’라는 친구를 통속화하려 든다.
그 속도만큼이나 산이 팍팍해져 간다면 사람들은 ‘이제 인수봉에 우정이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야’라고 덤덤히 말하게 될까. 생각 가능한 일은 결국 현실이 되지 않았던가? 이것은 의문이다.
생식을 탄 우유 한 모금을 마시고 맞는 가벼운 가을 아침. 인수봉에 바친 청춘이 후회 없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산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아기발산우회의 오철·안동수·윤병선·권구훈 그리고 이들의 산 친구 유학재씨다.
사람의 만남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인연의 연속이다.
여명산악회의 이찬경씨를 알 지 못했던들, 그리고 그에 의해 김태승씨를 만나지 못했다면 오늘의 만남도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산사람이 몸을 담은 소속 산악회는 마치 운명과 같이 결정되지만 이런 어울림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철씨는 박용욱·장순욱·양남기씨 등에 의해 ‘벗길’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조력한 사람이며 안동수와 윤병선·권구훈씨는 그의 후배다.
유학재씨는 오철씨의 손에 이끌려 고등학교 1학년 때 인수봉 남측 슬랩을 처음 오른 내력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오철씨가 그의 바위스승인 셈이다.
면면을 보니 오늘 ‘버벅’거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내 몸이나 잘 간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벗길을 오르자면 먼저 크랙과 슬랩이 혼합되어 있는 길을 한 마디 올라야 한다.
이 곳은 본격 루트라기보단 어프로치로 여기는 곳이다.
취나드A 코스로 가기 위한 진입로일 뿐 긴장할 만큼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찍을 틈도 없이 이곳을 훌쩍 지나 페이스가 펼쳐지는 출발점 아래로 오르니 그 곳엔 먼저 온 임자들이 있다.
그들을 기다리며 쉬는 시간을 번다.

 ◇ 취나드A 코스로 가는 쉬운 크랙을 지나 첫 마디를 오르는 안동수씨.


임자 있는 곳에 손대지 않는 불문율

1973년 5월, 개척자 박용욱과 장순욱이 굳이 이곳에 눈을 돌린 이유는 아직 손을 댄 흔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취나드B 코스 쪽을 관찰하다가 볼트 하나를 발견하고 ‘음, 임자가 있군’ 하고 발길을 돌려 아직 깨끗한 취나드A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 것이다.
누군가 볼트를 한 개라도 박은 흔적이 있으면 그 곳엔 손을 대지 않는 불문율이 그때는 엄연히 있었다.
지금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그곳으로 가는 오늘의 선등은 안동수씨다.
그는 날렵한 몸을 가졌고 벗길처럼 미세한 밸런스를 필요로 하는 곳에 딱 맞춤으로 보인다.
요철이 있는 울퉁불퉁한 페이스에 수직으로 뻗은 가는 크랙을 지나는 첫 마디. 8m 지점과 그 위의 3m, 그리고 다시 5m쯤에 설치된 볼트의 유혹을 물리치려는 안동수씨의 갈등이 읽혀진다.
볼트를 잡고 밟자니 구태의연하고 안 잡자니 마음이 요동을 치는 것이다.
레지에 올라서고 왼쪽 날개크랙을 지나 다시 밴드로 오르기까지 긴장이 팽팽하다.
뒤이어 오철씨가 붙는다.
10년 전의 암벽화를 신었지만 몸놀림은 아직 거침없다.
전쟁에서 끝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너덜너덜해진 아군들에게 마지막 일갈을 내리는 노병처럼 그는 후배들의 등반을 세세히 읽는다.
“병선이는 감회가 새롭겠어. 강산이 변하도록 안 왔지?”밀리는 발에 주춤하는 유학재씨의 몸놀림도 놓치지 않는다.
“공백이 있었다는 이야기지.”아직 가벼운 몸을 유지하고 있는 권구훈씨가 그곳을 깔끔하게 오르지만 둘째 마디 슬랩은 아직 볼트따기의 유혹이 살아있다.
안동수씨가 넘어가고 또 다시 오철의 차례. 그의 스타일은 수없이 벗길을 오른 몸짓이 틀림없다.
‘한때 인수봉에서 오철이 모르면 간첩이지.’ 선배들은 오철씨를 그렇게 표현했다.
사선으로 이어지는 트래버스를 지나고 셋째 마디에 도달해도 왼쪽으로 이어지는 방향은 계속된다.
80년대 초반 인수봉에 ‘첫 바위’ 하는 후배를 데리고 이곳에 왔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는 공포 속에서 등반을 마치고 인수봉의 모든 길이 이렇게 아삼삼한 줄 알았다고 한다.
어쨌거나 그땐 거침이 없었고 지금은 조심스러워진 것이 다른 점이다.
그 사선 트래버스를 유학재씨가 살금살금 기어오른다.
노련하고 끈질긴 그의 스타일이다.
넷째 마디가 시작되는 곳에서 벗길의 진행은 취나드B 코스와 나란히 직상하게 된다.
이곳에서 고도감이 껄끄러워 마음이 바뀌면 취나드B 코스의 넓은 크랙으로 안겨도 무방하다.
아직은 중앙선 침범이라고 위반 딱지를 끊는 것은 아닐 테니.
“그리로 왜 가? 원래 길로 가. 크랙은 아무것도 아니야. 거기서 오른발 딛고 왼손 푸시로 일어서면 끝나.”
안동수씨가 왼편의 만만해 보이는 크랙으로 가려하자 오철은 고지 탈환의 사명을 일깨운다.
“아! 맞아요. 옛날에 이렇게 갔어요.”
그가 다시 직상한다.
“그렇지. 오리지널은 그거야.”
왼쪽의 경사진 면을 푸시로 밀고 오른쪽으로 중심을 이동하여 다시 왼쪽으로. 볼트에 볼트, 우향 레이백 크랙까지 오르자 날 듯한 그의 몸이 잠시 주춤댄다.
볼트 위의 혹점을 딛고 일어서기 전에 마디를 끊던 곳이다.
아무래도 확보점이 불한한지 그 곳에서 15m 정도 위의 밴드까지 오른 후 확보를 마친다.
벗길의 주인공 박용욱·장순욱씨는 유독 죽이 잘 맞았다.
이 두 사람은 원래 여명산악회 회원이었다.
당시 인수야영장엔 언제나 반가운 친구들이 있었고 산천지·여명·산비둘기·인덕·아기발 그리고 장비가 많아 부러움을 산 마운틴빌라 등 분위기 맞는 산악회끼리는 살림 밑천까지 훤히 알고 지내는 터였다.
“그때는 산악회가 달라도 따지고 보면 한 솥밥을 먹고 살았던 셈이지요.”
“인수산장 지게 한번씩 안 멘 사람 없고….”
바위를 하지 않는 워킹 산행 때도 두 사람은 인수봉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이들이 계속 인수봉에 오는 데는 소속감이 필요치 않았다.
그리하여 산악회를 떠나 인수봉을 안방처럼 드나들기에 이르렀고 넘치는 에너지는 결국 등반 루트의 개척 작업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후배 양남기씨와 함께 1972년부터 눈독 들여온 동면 오른쪽 페이스에 개척을 착수한다.
그리고 1년 후 1973년 5월에서 8월에 걸쳐 ‘벗길’ 이란 정감 있는 이름의 150m 깐깐한 슬랩을 탄생시킨다.
그 길은 취나드A와 B 사이에 그어진 그들만의 자유공간이었다.
“벗길은 셋이서 굶어가면서도 좋아서 만든 길이지요.”
“하루에 세 코스 하고 저녁에 밤바위까지 했으니까.”

 ◇ 1973년도 벗길 개척 당시의 사진. 둘째 마디에서 셋째 마디 취나드B 코스와 만나기 전 장순욱씨의 등반을 박용욱씨가 확보하고 있다


스무 살 청춘의 집중력이 만들어낸 벗길

바위는 ‘짬밥’이다? 난 이 말에 동조하지 못한다.
그들이 입증했듯 바위는 집중이기 때문이다.
미쳐야 한다.
미치지 않고서 어찌 이들이 군에 입대도 하기 전 스무 살 청춘에 이런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을까. 떨어진 바지와 터져버린 등산화에서 애처로움보다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재간이 내겐 없다.
벗길은 바로 이들의 집중력에 의해 생겨났던 것이다.
벗길을 완성시킨 박용욱과 장순욱은 이듬해에 나란히 군에 입대한다.
그리고 이들과 어울리던 후배 오철씨와 동료들은 1974년 11월 10일에 아기발이란 이름의 산우회를 만든다.
창립 발기인은 오철·이승관·박용민·김진민·김유천·박용윤씨 등이 주축이 되고 박용욱과 장순욱을 고문으로 추대한다.
‘산행은 걷는 것부터, 아기발처럼 고운발로 순수하게’ 아기발은 이런 취지로 조용히 세상에 태어났다.
그렇게 의기투합하여 활동을 시작하지만 정작 주인공들은 더 이상 인수봉에 바칠 순결이 남아있지 않은 듯 장순욱은 제대 후 연고지인 대전으로 가고 박용욱은 결혼과 동시에 산을 떠난다.
그들의 집중은 마치 벗길의 운명처럼 짧고 간명하게 끝이 난다.
“앙카 바싹!”
맨 뒤로 오르는 윤병선씨의 구호가 오늘의 깔끔하던 분위기를 바꾼다.
아무래도 그의 인수봉 결석 기간이 좀 길었나 보다.
요즘은 ‘줄 당겨’로 통하고 예전에는 ‘줄 먹어’ ‘자 먹어’ 등으로 쓰이던 말. 한때 선배에게 먹으라는 반말이 어려워 ‘줄 잡수세요’ 라며 웃음짓던 ‘앙카 바싹’은 80년대 이전에 활동하던 구세대가 쓰던 말이었다.
이제 더 이상 길이 어렵거나 오랜만에 왔다고 거친 숨을 몰아댈 일이 없는 마지막 다섯째 마디. 바위가 거무튀튀한 색이 되어갈 때 슬랩과 크랙을 지나 널브러져도 좋을 넓은 테라스에 오르고야 만다.
거기엔 맑은 단풍이 언뜻 보이고 짧은 해가 인수봉의 그림자를 야영장에 길게 드리워 놓고 있었다.
긴장을 풀어버린다.
오늘 세 사람의 젊고 순수한 빛을 기억하는 후배들은 그들처럼 미소를 머금고 되뇌이리라. ‘산에 다닐 때가 행복한 거야’라고.

 ◇ 인수봉 벗길 등반 개념도


Information

인수봉 벗길 등반 가이드

인수봉 벗길은 취나드A 코스 왼쪽에서 취나드B 코스 상단을 향해 뻗은 슬랩 코스다.
루트 개척은 박용욱·장순욱·양남기 등에 의해 1973년 5월에서 8월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전체 등반 길이는 150m에 달한다.
루트의 난이도는 둘째 마디 상단 슬랩이 5.10d로 평가된다.
소요 장비는 50m 로프와 10여 개의 퀵드로, 작은 호수의 프렌드와 너트 2~3개가 필요하다.
등반이 종료되는 곳은 의대길과 취나드B 코스가 만나는 넓은 테라스다.
이곳에서 등반을 마치면 다시 원점으로 하강하는 편이 무난하다.

첫째 마디(25m)
울퉁불퉁한 페이스에 수직 방향으로 뻗은 크랙에서 출발한다.
오른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슬랩을 올라 볼트를 통과하고 사선 방향의 밴드에서 확보한다.
둘째 마디(20m)
사선 방향으로 뻗은 밴드 왼쪽으로 이동하여 볼트를 따라 직상으로 오른다.
마디가 끝나는 테라스 아래 볼트 구간이 5.10d로 평가되어 있는 까다로운 구간이다.
셋째 마디(27m)
오른쪽 사선 방향으로 볼트를 통과해 벙어리 크랙과 가로로 찢어진 크랙을 지나 밴드를 타고 왼쪽으로 오른다.
계속 진행 방향으로 이동하여, 삼각형으로 박힌 볼트에서 확보한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3m쯤 이동하면 취나드B 코스와 만난다.
넷째마디(43m)
움푹 파인 곳을 오르며 경사진 면을 푸시하여 크랙 밑으로 진입한다.
우향 레이백 크랙을 오르며 작은 호수의 확보물을 설치하고 수평 언더크랙을 이용하여 일어선다.
구형 링 볼트를 통과한 후 볼트를 이용한 인공등반을 한다.
그후 링 볼트에서 마디를 끊어야 하지만 볼트가 낡아 밴드까지 오르는 것이 좋다.
다섯 마디(35m)
밴드를 타고 왼쪽 비스듬히 오르면서 볼트에 통과하고 크랙을 지나 취나드B 코스와 의대길이 만나는 큰 테라스까지 올라 등반을 종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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