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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봉화대리지

팬더마당 2010. 5. 12. 20:52

연일 쏟아지는 장맛비 사이를 교묘히 피해서 금년 들어 여섯 번째 설악을 찾은 것은 지난 7월 10일 토요일 아침이었다. 본지 이훈태 전무와 필자 둘이서 영동고속도로를 경유 설악동 적십자 구조대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 30분. 전서화 구조대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그러나 전 대장은 벌써 일주일째 계속된 실종자 수색작업의 피로와 수면부족으로 컨디션이 좋아 보이질 않는다.

울산암에서 추락 실종된 것으로 예상되는데, 취재팀이 도착했을 때까지 많은 구조대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난자의 생사를 확인 못하고 있었다. 일주일 전 울산암 전망대에서 ‘나들이 길’ 리지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사람들과 헤어진 실종자는 서울에서 타고 내려온 자신의 승용차와, 애끓는 가족들만 남겨둔 채 소식이 끊긴 상태였다. 7월 19일 취재를 마치고 서울에서 시신을 발견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 취재 코스는 설악동을 기점으로 하고, 어프로치가 1시간 이내의 당일등반에 무리 없는 코스를 계획했었다. 적십자 구조대원들과 동행 취재할 예정이었지만 실종자 수색작업이 지연되고, 장마철에 맑은 날을 택일하다 보니 아쉽게도 함께 갈 수 없게 되었다. 의논 끝에 취재코스는 봉화대리지로 정하고 필자와 이훈태 전무 둘이서 오늘은 정찰등반만 하고 본 등반은 내일(7월 11일) 하기로 계획하고 소공원을 지나 비선대 쪽으로 향했다.

외설악 봉화대리지는 설악동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오른 후 가장 높은 봉화대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내린 암릉을 말한다. 이 리지는 집선봉에서 흘러내리는 망군대와 소만물상을 손에 잡힐 듯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으며 울산암의 웅장한 모습이 뒤에서 받쳐주는 풍광이 매우 뛰어난 코스다. 지난달 남설악 칠형제봉리지에서 뛰었던 가슴이 겨우 진정 될 만 하다 싶었는데, 그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이곳 외설악 봉화대리지에서 나의 온몸은 전율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부력 없는 날개 짓을 퍼득거리며 작은 새가슴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환희에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설악은 모든 산악인들의 영혼들을 흡입하는 강력한 블랙홀이 되었고 그곳에 빨려 들어갈 것을 알면서도 불나비처럼 발길을 설악으로 설악으로-되돌리게 만드나 보다.

봉화대리지는 알려진 것만큼은 산악인들이 아직 많이 찾지 않은 코스다. 접근로도 매우 희미하며, 등반 루트에 꼭 있어야 할 곳에 고정 확보물이 없기 때문에 프렌드와 슬링을 여유 있게 준비해야 한다.

내 확보물은 내가 설치

확보물로는 나무보다 암각을 많이 이용하게 되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4개의 큰 봉우리와 여러 개의 돌출 암봉으로 된 리지는 각 봉우리를 넘을 때 자신의 능력에 맞게 약간의 변형코스를 시도해 볼 수 있는 다양한 루트가 있어서 좋다. 구간별 루트에 따라 최고난이도를 5.7급이나 5.10급까지 선택할 수 있으므로 초보자와 상급자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있다. 다만 고정확보물이 없고 루트보수가 잘 되어있지 않아서 안전등반에 대비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아직 산악인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탓인지, 뚜렷한 코스 개척자가 없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봉화대 리지는 “자신의 확보물은 자신이 설치한다”라는 생각으로 등반에 임해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등반방식이며 그렇기 때문에 봉화대리지만이라도 볼트하켄의 남용에서 제외되길 바란다. 짧은 접근로와 뛰어난 경관은 앞으로 많은 클라이머들에게 사랑받는 코스가 될 것이다.

한 가지 조심할 사항은 이번 취재등반은 2일간 했는데 매일 뱀을 보았다. 그것도 암벽 주변에서 꽤 큰놈으로서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고 있는 듯 보였다. 장마철이라서 몸을 말리기 위해 건조한 바위부근에서 놀았겠지만 클라이머에겐 위험한 파충류이므로 등반 시 조심하기 바란다.

뱀은 건드리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지 않으므로 뱀이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착각할 수 있는 불필요한 동작-짧은 막대기로 뱀을 건드리는 행위-은 절대 삼가야 한다.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9시 성균관대학교 산악부 대장인 이지혜씨가 취재팀에 합류하여 어제 올랐던 접급로를 따라 다시 바위로 향했다. 식은골 초입은 희미한 길이 있으나 20분정도 올라가면서 등산로는 거의 없어진다. 짐승 다니는 길과 사람 다녔던 길이 서로 교차하면서 오늘도 등산로를 중간에서 놓쳐버렸다. 다행스럽게도 어제 <1봉> 등반을 해두었으므로 그냥 바위사면과 능선을 가로질러 <2봉> 하강 지점까지 바로 올라갔다.

봉화대리지 <1봉> 출발지점에는 색 바랜 붉은 슬링이 매달린 하켄이 1개 박혀 있을 뿐 이곳이 정말 출발지점인지 의심될 정도로 사람들 발길 흔적이 없다. <1봉>은 직벽크랙 이지만 홀드와 스탠스가 많아 어려움은 없다. 다만 중간 확보물 설치가 마땅치 않아서 왠지 불안하다. 직벽 끝부분은 약간 오버행이므로 프렌드를 1개 끼우고 넘어선다. 경사는 완만해 지며 나이프리지를 걸어가 정상 암각에 확보한다.

길이는 40미터다. 오른쪽 바위 밑을 따라 우회 가능하다. <1봉>을 넘어 바위사면을 걸어 내려간 다음 턱걸이 오버행을 넘어 안부로 가거나 왼쪽으로 우회하면 된다. 35미터 둘째 마디가 끝나면 권금성터가 나온다. 식은골 계곡 중간에도 제법 큰 성터가 있는데 이곳 성곽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권금성은 원나라 침입 시 권씨, 김씨 두장사가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그 옛날 험한 리지를 이용하여 꽤 넓은 지역을 연결, 천연요새를 구축한 역사의 흔적을 보는 것도 봉화대리지의 새로운 흥밋거리다.

성터에서 시작하는 셋째 마디인 <2봉>은 계단식 사면에 홀드가 양호한 구간이다. 중간 나무에 확보하고 2봉 벽면을 오른쪽으로 트래버스하고 조금 걸으면 하강용 쌍볼트에 닿는다. 하강을 15미터 남짓하면 된다. 어제는 성터까지 등반하고 소공원 쪽 계곡으로 바로 하산했다.

오늘 접근로에서 한바탕 헤매고 2봉 하강지점에 도착하니 원주 클라이머스 소속 대원들 3명이 <2봉>을 내려선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아는 사람들의 안부도 묻고 하면서 함께 등반하기로 했다. 필자가 선등을 하면서 앞으로 속도를 내며 3봉에 붙었다.

물거품이 된 케이블카 하산

오른쪽은 쉽게 연속등반으로 오를 수 있고 왼쪽은 고도감 있는 크랙등반을 30미터 해야 한다. 프렌드 큰 것 3~4개를 설치하고 오른다. 넷째 마디가 끝나면, 다섯째 마디, 여섯째 마디는 연속등반이 가능한 슬랩과 크랙으로 이어진다. 아침부터 흐린 날씨는 등반하기에 딱 좋을 만큼 햇볕을 가려 주었다. 다만 멀리 보이는 울산암과, 가까이 보이는 집선봉이 흰 면사포를 벗었다 썼다 하는 것이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신비감은 오히려 상승한다. 여섯째 마디가 끝나자 거기엔 천상의 화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규모 하얀 바람꽃 군락과 보라색의 솔체꽃, 연잎꿩의 다리, 산솜다리(에델바이스), 노란 돌양지꽃, 바위채송화 등이 약 50평 되는 넓은 테라스 지역에 오순도순 화원을 이루고 있었고, 한참 영글어 가고 있는 잣송이들이 손닿는 곳에 드문드문 서있다. 산행을 하다보면 하룻밤 머무르고 싶은 곳을 이따금 만나는데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다. 꽃 친구들과의 아쉬운 작별을 하고 등반을 계속한다.

일곱째 마디는 왼쪽 벽의 크랙, 가운데의 넓은 침니로 가기도 하지만, 나는 오른쪽 턱을 올라서서 프렌드 하나를 끼우고, 과감하게 고도감이 심한 슬랩으로 나아갔다. 실제로 올라서보니 바위 마찰력이 좋아 어렵지 않다. 크랙과 슬랩으로 20미터를 오르니 커다란 바위에 코드슬링을 두 바퀴 감은 확보물이 기다린다. 낡고 곰팡이가 슬었지만 확보자리가 좋기 때문에 이곳에 확보하고 후등자를 올렸다. 이 구간은 보통 중앙침니로 올라 개구멍을 통과하기도 한다.

여덟째 마디는 항아리 바위를 안고서 오른쪽으로 살짝 돌아 다음 크랙으로 올라 암봉 사이의 직벽에 붙었다. <3봉>으로 뻗은 직벽은 오른쪽 작은 테라스에서 시작하여 크랙에 프렌드 작은 것을 끼우고 구멍 뚫린 날개바위에 슬링을 걸어 통과시키고 과감하게 완력등반을 시도했다. 직벽 5개를 올라서니 2평 남짓 테라스가 있고 또다시 크랙은 직상하고 있다. 다시 크랙에 프렌드 하나 끼우고 직상을 시도하는데 몸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자세가 불안하다.

“무리하지 말자!”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프렌드에 살짝 의지해 왼쪽크랙으로 진입하여 2미터 올라선 다음 큰 암각에 확보했다. 이 구간은 일반적으로 5미터 직벽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트래버스 하는 구간이다. 트래버스 중간에 볼트가 1개 박혀있으므로 <3봉>을 오른쪽으로 40미터 도는 루트인데 우리는 3봉 정상으로 직상하는 루트를 오른 것이다. 뒤따르던 원주 클라이머스 대원들이 새로운 루트를 알았다며 좋아한다.
오른쪽 트래버스용 볼트는 잘 찾아야 보이므로 주의해야한다.

아홉째 마디는 쉬운 암릉을 40미터 걸어가면 넓은 공간이 있고, 봉화대에 오른 관광객들의 모습이 지척에 보인다. 로프는 사려서 배낭에 넣었고 장비는 그대로 착용하고 봉화대 정상으로 올라갔다. 관광객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며 수근거린다. 넓은 마당바위에 내려선 다음 장비를 풀고 원주 클라이머스 대원들이 “꼭 먹고 가야한다” 며 내민 강원도 감자를 나누어 먹고 케이블카 정거장으로 갔다.

그러나 케이블카를 이용하려고 했던 화려하고 사치스런 하산의 꿈은 여지없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케이블카는 소공원에서 왕복표만 판매하기 때문에 편도 손님은 탑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등반의 감동을 상처 받기 싫어서 두말없이 그곳을 빠져 나왔다. 아름다운 강산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과 이기적인 상혼을 묵인하고 있는 관련 기관의 무기력한 그늘 아래서 살아야 하는 허탈감이 교차했다.

안락암 무학송 아래서 토왕성 폭포와 노적봉, 그리고 발아래 펼쳐진 소토왕벽을 바라보며 우리는 다시 진기를 발과 어깨에 주입시켰다. 33년 전 겨울- 주인 없는 안락암에서 하룻저녁 자고, 빙판 진 권금성길을 반나절 걸려 내려왔던 학창시절 동계등반 추억을 떠올리며 33년만의 권금성 하산길 1시간은 너무나 “즐거운 산행 길” 이었다. [글|이규태(쎄로또레 등산아카데미 원장) 사진|이훈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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