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암 리지는 백운대 남벽아래 약수암 뒤에서 원효리지 백운대 구간으로 연결되는 암릉길이다.
서울지역에 영하 9.5°c의 강추위가 몰아 친 지난 2월 11일 오전 9시, 취재팀 3명은 우이동에 모였다. “너무 추워서 오늘 등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지난 12월 황장산 수리봉 리지를 계획했던 날 40밀리미터가 넘는 폭우로 취재를 포기해야 했고, 필자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으로 인해 또 한 번 연재를 못한 상황이라 우리는 “일단 리지에 붙어보고 그때 가서 판단하자!”며 장비를 챙겼다.
구정연휴 징검다리 근무일이라 북한산도 조용했다.
필자와 쎄로또레 등산아카데미 원영재(67세)씨, 본지 김남곤 사진기자 이렇게 셋이서 단촐하게 출발했다.
도선사 주차장에서 산길로 접어들자 들이마시는 공기가 코에서 얼어붙는다.
필자의 코는 영하 11°c에서 얼어붙는다. 그래서 동계등반 시 코는 온도계 역할을 한다.
코로 숨을 급히 들이마시면서 얼어붙는 정도에 따라 기온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운산장에 도착해 온도계를 보니 영하 11.5°c. 코는 정상적으로 작동중이다.
필자와 김 기자는 아침 일찍 나오느라 제대로 챙겨 먹질 못해서 따뜻한 국수 한 그릇씩 먹고 위문을 넘었다.
어프로치 거리만 계산하면 북한산성 매표소를 들머리로 해 접근하는 것이 짧지만, 교통편을 감안한다면 우이동기점이 시간은 짧게 걸린다.
백운대 남벽 허리를 가로 질러 <신동엽 시인의 길> 리지(본지 2004. 10월호 176쪽)와 만나는 작은 암릉상 전망대 바위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이면서 얼어붙은 얼굴을 서로 바라본다.
신동엽 시인의 길 취재 등반할 때 원영재씨가 여성대원들을 데리고 이곳 전망대 바위 아래에서 탈출했던 기억이 새롭다.
전망대 넓은 테라스 위에는 쌍볼트가 두 군데 설치되어 있고, 그 옆 10미터 암릉상 또 다른 쌍볼트에 썩은 슬링이 매달려 있다.
그 위쪽 암릉을 살짝 넘어 갈라진 바위사이를 빠져 내려가면 위로 돌아 내려오는 길과 만난다.
여기서 20미터쯤 걸으면 가는 쇠줄이 설치된 큰 피톤이 보이므로 이쯤에서 안전장비를 착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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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암 리지는 어프로치하는 도중에 이와 같은 위험구간을 통과한다.
이곳은 규모가 큰 슬랩구간으로 내려가기 횡단인데, 반대편에서 올라올 때는 그런대로 쉽지만 어프로치하는 도중에는 내려가야 하므로 매우 위험하다.
더구나 쇠줄이 끝나고 5미터 정도는 확보물이 없으므로 선등자는 이곳에 고정 로프를 설치해 주도록 한다.
횡단이 끝나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마주보이는 약수암 리지 출발지점을 향해가는 도중 낡은 고정로프가 설치 된 지점에 빙벽이 생겨 갈 수가 없다.
계곡 왼쪽 바위 사면을 따라 내려섰다.
리지 출발지점은 소나무가 좌우에서 아치를 만들고 있었다.
필자는 마치 환영이라도 본 듯 그 사이를 통과해 바위 앞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주렁주렁 매달린 등반장비를 점검한 다음 털장갑을 벗었다.
영하 11도 혹한의 암벽에서 필자의 손은 얼마나 버텨줄까!
첫째 마디는 슬랩으로 시작하는 쉬운 구간이다.
슬랩을 올라 오른쪽 너덜밴드를 따라가면 쌍볼트에 썩은 슬링이 있다.
이곳에 확보하거나 5미터 더 올라가 크랙에 서있는 작은 소나무에서 마디를 끊거나, 25미터 위 큰 소나무에까지 올라도 된다.
날씨가 추워 고어텍스 등산화를 신었더니 슬랩에서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든다.
큰 소나무 지나 암릉길을 걸어 오르면 오른쪽 아래로 캠프지가 보이고 그곳에서 바로 올라올 수도 있다.
셋째 마디는 적송 두 그루를 따라 슬랩을 오르면 2단 벽 아래에 닿는데, 여기서부터는 고도감이 심해진다.
큰 암각에 올라가 슬링으로 확보물을 설치하고 카라비너를 통과시킨다.
다시 내려선 다음 바위에 바짝 붙어 2번째 계단에 올라서면 볼트가 보인다.
필자는 등산화 바닥이 얼어 슬랩에서 자꾸 미끄러진다.
슬랩을 피해 벽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트래버스 한 다음 손가락에 겨우 잡히는 겹바위를 곡예 하듯 붙잡고 매달리면서, 프렌드 제일 작은 것을 한 개 끼우고 과감하게 올라섰다.
손 감각을 살리기 위해 손등 보호용 가죽장갑도 끼지 않았다.
손끝이 얼어 감각이 없고 바위표면에 스친 손등은 금세 상처가 난다. 처음 올라보는 코스라서 그런지, 아니면 혹한에 심리적 위축이 되었는지 자꾸만 추락에 대한 망상이 떠나질 않는다.
넷째 마디는 원영재씨에게 선등을 권해보았다. 67세의 나이에도 금년 겨울엔 빙벽반까지 수료한 무던한 바위꾼이다.
젊은 시절 손가락 세 개가 잘리는 사고를 당했지만 자신의 핸디캡을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다.
오늘도 필자의 확보를 봐 주기위해 추위에 떨고 있다.
선등을 하면 추위가 조금 풀리겠지 생각하며 권했더니 “제가 올라갈 수 있을까요?”라며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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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올라갈 수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중간에 프렌드 하나 끼우고 올라가 보세요.” 레이백(발로 차고 손으로 당기는 등반기술)으로 오르더니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잠시 뒤 “완료!”하는 소리가 들린다.
김남곤 기자가 주마링으로 오르고 필자는 루트 변경을 시도해 오른쪽 페이스 루트를 통해 경사 심한 폭 2미터 정도의 암릉으로 올랐다.
확보가 되어 있다는 것이 이렇게도 자신감을 주는가?
선등의 공포는 사라지고 고도감을 즐기는 환희에 젖어본다. 원영재씨도 선등을 해냈다는 만족감으로 밝은 표정이고 운동량 증가로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다.
다섯째 마디는 짧은 침니를 올라도 되고 오른쪽 우회로도 있다. 침니를 오른 다음 5미터 밖에 안 되지만 여기서 마디를 끊어주어야 한다. 만만치 않은 다음 마디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마디 출발점에 있는 볼트는 갈라진 바위 건너편에 높게 박혀 있다.
키 큰 원영재씨에게 퀵드로(추락시에 대비해 확보물에 걸고 로프를 통과시키는 장비) 설치를 부탁하고 카라비너를 통과 시켰다.
퀵드로를 이용해 일단 벽에 붙은 다음 왼쪽 레이백으로 진입했다. 오른쪽 직벽으로도 등반이 가능하다. 왼쪽으로 걸어서 우회할 수도 있다. 등반길이 25미터. 참나무에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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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마디는 네 개의 이빨이 하늘을 향해 뻗은 듯한 바위를 오르면 볼트가 1개 나타난다.
이 볼트 역시 높게 박혀있어 도저히 닿지를 않는다. 크랙에 프렌드 중간 크기를 끼우고 살짝 올라서 퀵드로를 걸었다.
고도감이 매우 심하고 폭 1미터의 아슬아슬한 암릉이 이어진다.
25미터를 올라가면 다시 참나무에 확보한다.
이곳은 왼쪽 오버행 밑 손가락이 겨우 들어가는 언더 홀드를 이용해 트래버스 할 수도 있다.
리지화나 암벽화라면 슬랩등반도 가능하다.
일곱째 마디가 끝나면 원효리지 백운대 구간과 합류한다.
비로소 추락의 공포에서 해방된 듯 하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한 눈에 들어오는 의상봉 능선과 그 뒤 비봉에서 시작되는 북한산 주능선 조망을 즐긴다.
염초봉, 원효봉이 저만치 발아래로 보인다. 노적 쌍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노적봉에 오를 때 마다 약수암 리지를 언제 오르게 될까하고 기대했었는데 이렇게 추운 날 오르게 될 줄이야.
다행히도 맑은 날씨와 바람이 약해 등반은 성공했지만, 이곳 약수암 리지는 서울 근교에서 가장 리지다운 리지라 생각된다.
출발에서 백운대 정상까지 계속 리지로 연결된다.
중간에 걷는 구간도 별로 없다.
그리고 암릉을 우회하지 않고 공제선상의 암릉이 백운대까지 계속된다.
좌우로 시야를 가리는 어떠한 바위도 존재하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리지다.
역시 북한산은 바위의 왕국이며 등산의 백과사전이다.
약수암 리지는 크랙에 의지할 수 없는 순수파 리지코스다.
날카로운 공제선상의 암릉이므로 추락시 치명적인 사고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불필요한 확보물이 없어 고감도 등반을 즐길 수 있지만, 초보자들에겐 등반이 끝날 때까지 공포감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